*가이드버스이지만 가이드버스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독자 설정이 많습니다.

*roselle님이 연성할 적흑은 초능력자 아카시 X 바이올리니스트 쿠로코 입니다

#적흑진단메이커 https://kr.shindanmaker.com/709011 




애달프고, 유려한 바이올린 가락. 아카시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환자 옆에서 소음은 별로 추천할만한게 못 되는데."

"환자도 환자 나름이어야지요."


작게 웃으며 한 말에 퉁명스러운 타박이 돌아왔다. 아카시는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처음부터 단어 선택을 일부러 잘못하긴 했다. 온 몸이 아팠다. 그래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무표정한 얼굴로, 하늘색 머리 남자가 바이올린과 활을 들고 아카시가 앉은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무거울텐데.


방은 환했다. 인공적인 불빛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창을 통해서 들어왔다. 


아카시는 창 너머를 바라봤다. 같은 높이의 건물은 몇 없었다. 


"가이드가 좋긴 좋네."

"갑자기 뭔가요?"

"테츠야가 아니였으면 나는 지금쯤 실험소 지하에서 눈을 떴을 거라는 이야기."

"그래서 소음을 참는거고요?"

"이런, 삐졌어?"

"화난 겁니다."

"응, 미안. 그렇지만 어느쪽인가하면 아무리 듣기 좋은 음악이라도 알람이라면 짜증나게 된다는 이야기야."

"난 너한테 알람이나 해주려고 연주 한게 아니에요."

"알아. 연습이지? 2주후에 공연이었던가?"

"…알고 있었네요."


쿠로코가 두 눈을 깜박였다. 그 모습이 천진난만하게 어려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린 아카시의 모습을 봤던 표정과 닮아있었다. 의아해하는거구나. 아카시는 그 표정을 마음속 수납함에 담았다. 무표정한 쿠로코의 조그마한 감정의 움직임을 하나둘씩 알아낸다. 그 때의 즐거움을 이루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당연하지. 내 가이드인데."

"감시입니까?"

"그냥 스케쥴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야."

"그게 감시…."


툴툴거리려던 쿠로코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아카시에게 구슬려질 것이라는 걸 아는 것이다. 


"저기, 테츠야."

"네."

"나 이번에 엄청 노력했는데."

"하아, 그렇습니까."

"칭찬 해주지 않을래?"

"…지금 바깥으로 나가면 당장이라도 받을 수 있을걸요. 이번 사건, 엄청 크게 보도 됐으니까."


쿠로코가 무감동하게 말했다. 아카시가 목에서 웃는 소리를 냈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창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아주 작게 보였다. 헬기가 날아다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건 해결 후 뒷처리도 끝난 모양이다. 그만큼 오래 잠들어 있었다. 능력을 그만큼 썼으니까.


이 세계는 초능력자가 존재하는 세계다. 초능력자는 크게 부작용을 가진 에스퍼와, 그런 에스퍼의 부작용을 달랠 수 있는 가이드로 나뉜다. 예를 들어, A라는 파이로키네시스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아카시 같은 경우에는 두통이다. 두통으로 기절한 적도 있으니까 부작용의 심각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 에스퍼의 부작용을 달랠 가이드. 부작용이 작은 대신 힘이 작고, 대신에 발견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는 매우 희귀한 존재라, 사람들은 종종 농담처럼 궁합 90%가 넘은 에스퍼와 가이드를 운명의 한쌍이라고 한다. 


아카시와 쿠로코는 그 매우 희귀한 운명의 한쌍이다. 사명감이나, 호기심 혹은 떡고물 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소의 문을 두드려 가이드 궁합 측정으로 만난 게 아닌 아카시가 쿠로코를 발견한 만남 때문에, 친한 연구원들은 진짜 운명 아니냐며 놀리는 경우도 있다.


'뭐,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아카시가 쿠로코에게 손짓해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었다.


"오늘 햇빛이 좋네."

"…네."


이건 아카시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려다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인정해버린 패턴이다. 쿠로코는 매우 성실하다. 본인은 아카시의 가이드가 되면 제공되는 특혜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의 가이드가 되어버린 것을 매우 신경쓰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걸 신경쓴다는 점 자체가 성실하다는 증거다. 그래서 그걸 신경쓰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던게 계기였지만.


사명감에 쌓여 있는 에스퍼도, 호기심에 찾아온 에스퍼도 모두 만나봤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거부해버리고 말았었다. 아카시 자신이 견딜 수 없었던 탓이다. 그 덕에 십여년간 부작용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래서 겨우 만난 이 운명의 가이드는 손안에 쥐고 불면 날아갈새라 매우 소중히 하고 싶다.


"연주, 해볼래?"

"네?"

"이번엔 맨정신으로 들어줄테니까."

"아뇨, 딱히 사람 앞에서 들려드릴만한 건."

"프로의 연주가 그럴리가 있나."


아카시가 낄낄 웃으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침대에 앉았다. 프로라고는 해도 바이트와 병행하던 간신히 오케스트라 구색만 갖춘 곳의 평범한 바이올리스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시는 쿠로코의 연주가 좋았다. 객관적으로 봐서도 아직 발전할만한 구석도 있다. 아카시의 가이드가 된 이후로는 바이트를 점점 줄이고 있으니까, 실력이 조금 더 발전하면 좋은 곳으로 가거나, 솔리스트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쿠로코는 아카시의 말이 맞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실랑이를 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여겼는지 심호흡을 하고, 바이올린을 목 사이에 끼운 뒤 현을 들어올려 가져다댔다. 직후 애절한 바이올린 음색이 쿠로코의 손 끝에서 튀어나왔다. 


'아, 이 곡은.'


쿠로코와 처음 만났을 때 쿠로코가 키고 있던 곡이다. 그때부터 연습하던 건가? 아니면 또다시 이 곡을 연주하기로 결정됐나. 오케스트라 공연은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대중의 귀에 익숙한 곡으로 세트 리스트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런 것 치고는 그다지 대중적인 곡은 아니였다. 하지만 뭐 어떤가. 지금 중요한 것은 쿠로코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아카시가 그 연주회의 유일한 관객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방해할 리 없는 휴일의 둘뿐인 연주회.



*



"너, 이름은?"


그 날의 연주회는 엉망이었다. 계속 지휘자가 바뀌고, 대부분 따로 일을 하는지라 전원이 제대로 합을 맞춰본 적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연을 성공시키는게 프로라고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공연에 집중했던 쿠로코는 관객석을 볼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기적'으로 유명한 6명의 에스퍼들 중 하나인 아카시 세이쥬로가 다짜고짜 대기실에 찾아와 이름을 물었을 때도, 얼굴을 알아보기 보다는 다 큰 남자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다는 점에 더욱 놀라고 말았다. 


남자는 거칠게 정장 소매로 눈물을 닦고, (버튼이 안 아팠을까.) 다시 한번 쿠로코에게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돼?"

"쿠로코 입니다만."

"너, 가이드 테스트 볼 생각 없어?"

"네?"


가이드 테스트란 일종의 초능력자 자격시험으로,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그래서 등록이 용이한) 보기에 화려한 에스퍼들과 달리 다른 에스퍼의 능력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가이드들을 발굴하기 위한 시험이다.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오므로 바이올린을 켜기 위해 일정한 직업도 없이 바이트를 반복하는 쿠로코로써는 한번쯤 생각해본 적 있던 시험이었다. 가이딩이 사람과의 스킨쉽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해버렸지만. 


그런 테스트를, 처음 보는 남자가 권하고 있는 것이다. 쿠로코는 남자의 얼굴을 눈을 깜박이며 한참 쳐다보다가, 어딘가 낯익다는 걸 느꼈다. 남자는 조금 기다리다가, 초조한 듯 말 했다.


"뭐든, 뭐든 해줄 수 있어. 돈은 보조금도 나올테고 모자라면 내쪽에서도 내줄거고, 오케스트라 후원도 집도 차도 해줄 수 있고, 연인이 필요하다면 맞선도 시켜줄 수 있어. 명예가 필요하면 솔리스트 데뷔도, 좋은 선생을 붙여줄 수도 있고."

"하아."

"그러니까, 받아주지 않을래? 그리고 괜찮다면 내 가이드가 되어주면 좋겠어."

"음, 그러니까, 아카시, 세이쥬로씨?"


남자는 금방이라도 파삭하고 부서질 것 같은 느낌으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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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s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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