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흑 전력으로 "요리"

赤黑 2017. 10. 22. 23:22

*트리거 워닝 : 교통사고, 그로 인한 후유증을 가진 인물의 등장.




어깨가 아프다. 쿠로코는 한숨을 쉬며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오늘도 탈락인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취활 중. 분명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티비에서 이야기는 듣고 있는데, 그 좋은 경기는 쿠로코에게까지는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전철은 커녕 직통 버스도 없어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은 쿠로코가 겨우 자취방에 도착했다. 간신히 도쿄라는 주소를 달 수 있는 교외. 거기에 있는 낡은 모퉁이 방이 지금의 쿠로코의 거처였다. 모퉁이지만, 고독사가 있었던 방이라 집세는 그리 비싸지 않다.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가동시켜 다른 회사의 서류 면접 결과를 확인했지만, 전부 꽝. 기원메일 뿐이었다. 쿠로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쿄에 많고 많은 회사 중에 쿠로코를 받아 줄 회사는 단 한 곳도 없나. 


사실대로 말하면 이미 자존심이고 뭐고 꺽은 상태였지만 그것보다 더 꺽어야 할지도 몰랐다. 쿠로코는 노트북을 밀어버리고 탁자 위에 엎드렸다.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가는 게 나을까? 그렇지만 가족들은 부친의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로, 이미 셋이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거기에 무직인 쿠로코가 굴러들어간대도, 좋은 방향으로 구르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도 아직 있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쿠로코는 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소자녀화 시대, 새로운 자리는 그리 쉽게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 회사로 눈을 돌린 건데, 그 마저도 힘들다. 하기사, 쿠로코 자신이 생각해도 고전문학을 전공한 문과를 뽑을 이유가 없다. 만엽집이라도 읽을 생각인가?


쿠로코는 터덜터덜 일어나 가스레인지에 불을 피웠다. 물을 담은 냄비를 올리고, 어느정도 물이 끓자 달걀 두개를 집어넣었다. 그 사이에 머리가 좋아진다는 견과류를 몇개 집어먹었다. 부모님이 보내준 돈으로 생활하는 쿠로코의 유일한 사치였다. 


삶은 달걀을 오물오물 깨서 소금에 찍어먹고 있는데, 누군가 딩동- 하고 벨을 울렸다. 쿠로코는 이 작은 건물이 보안이 잘 되지 않아 가끔 종교권유를 하는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없는 척을 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끈질긴 듯 딩동, 하고 벨을 다시 눌렀다. 


그 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날, 집에서 나선 쿠로코의 문고리에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뭔가 싶어 뒤져보니 소바면이었다. 어제 벨소리 두번만에 물러난 건 새 이웃이었나보다. 쿠로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미안해졌다.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이었는데, 괜히 종교권유로 오해를 해서는. 쿠로코는 그렇게 생각하고 학교로 향했다.


얼마 남지 않은 수업을 듣고, 취업 박람회 일정을 다시 알아봤다. 전단지를 보고 있는데, 손목이 아려왔다. 콰직. 종이를 그대로 움켜쥐어 구겼다. 수업은 다 들었으니 집에 가야할 것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 이번에는 저번보다 덜 걷는다. 직통 전철이 있다. 이것때문에 순전히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방을 향해 걷고 있는데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났다. 카레다. 쿠로코는 킁킁, 공기 중의 향기를 맡아보았다. 확실하다. 


쿠로코는 요리를 잘 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집에 있었고,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던 고등학교 때도 카가미라는 훌륭한 요리 실력과 함께 자취하던 친구가 있었다. 물론 성실한 인품도 포함이다. 즉, 무슨 말이냐 하면 쿠로코는 식탁에 앉아 배가 고픕니다 라고 하면 밥이 나오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쿠로코는 요리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것이 종래에는 지금처럼 삶은 달걀로 끼니를 떼우는 형편이 된 것이다. 편의점 도시락? 가끔 먹는다.


하지만 오늘은 카레가 매우 먹고 싶어졌다. 쿠로코는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려 근처 마트로 향했다. 정작 사본 적은 별로 없지만 장소는 알고 있다.


마트에서 쿠로코는 익숙한 모양의 고형 카레 브랜드 하나와 감자와 양파와 카레용이라 쓰여져 있던 돼지고기 한 팩을 샀다. 그나마도 마감 세일이어서 돼지고기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30여분 후─


쿠로코는 탄 냄새와 삐익삐익 울려대는 화재경보기와 새까맣게 탄 정체불명의 물체가 담긴 냄비를 앞에 두고 평소의 그 순진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옆 방에서 후다닥 인기척이 나고, 문이 쾅 열리고, 이쪽으로 향해와서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쿠로코는 어쩔까 천천히 고민하다가, 문부터 열었다.


"쿠로코!"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카, 시군?"


3년만이었다.


"쿠로코! 괜찮아?!"

"네, 일단."


아카시가 쿠로코를 끌어안고 이리저리 몸을 확인한 다음 방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 다음 가스레인지를 끄고, 새까맣게 탄 냄비를 싱크대에 집어넣어버렸다.


"젠장, 이렇게 나타날 생각은 아니였는데."

"어, 그러니까, 아카시군이 옆방에서 살고 있었던건가요?"

"온지는 얼마 안 됐어."


아, 그 소바. 아카시라면 충분히 할 만한 일이다. 이제는 하지 않는 풍습하며 그걸 일일히 돌릴 재력까지. 


"그러면…오랜만이네요, 아카시군."

"그래, 모습을 감추고 폰번호도 바꾸고 라인 아이디도 삭제했던 쿠로코. 3년만이야."


쿠로코가 천천히 열린 문을 통해 자신의 방을 바라봤다. 낡고, 초라한, 그렇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성을. 아버지처럼 휠체어를 타고다닐 지경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덕분에 도쿄에서 대학도 혼자 제대로 다닐 수 있었으니까. 쿠로코가 눈을 감았다. 언뜻 이 3년간의 고생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쿠로코가 다시 눈을 떴다. 아카시가 아는 사람이 보면 아는 화가 난 표정으로, 쿠로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화가 걱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쿠로코가 언제고 올 날이었다고 자조했다. 자존심을 꺽고 아카시 콘체른의 회사에도 몇번 서류를 냈다. 드문 이름이니 아카시가 개인정보를 손에 넣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주소도 적혀 있으니까 집을 알아차린 것도 이상하지 않다.


"네,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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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s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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