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흑이 라쿠잔에서 처음(?) 만난(?) AU

*날조 대행진.

*모브 등장.

*쿠로코가 소설 쪽에 재능이 있다는 설정입니다.

*무표정하지 않은 쿠로코.

*중간에 끊깁니다.





 세이쥬로라는 이름에 호불호는 없었다. 어차피 아래이름이기도 했고,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몇 없었고, 농구를 시작하게 되면서 십을 지배한다는 그 뜻도 나쁘지 않다고 느껴졌으니까.


다만,


'고리타분한 이름이야.'


심심풀이로 집어든 시대소설에 한자야말로 다르지만 같은 세이쥬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닌자와 사무라이, 그 외 쓸데없이 복잡한 야규신음류라던가 북진일도류 같은 이름의 검술이 등장하는 소설.


아카시는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과제는 이미 다 해두었지만 학생회일은 조금 남아있다. 머리를 식히려고 본 시대소설이지만 재밌냐고 하면, 글쎄다. 평범하게 타켓층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애초에 중년층 남성이 좋아할만한 요소만 잔뜩 있는 이야기고. 모든 시대소설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그런 시대소설을 왜 읽게 되었냐면 할 말은 없다. 그냥 호기심이라는 변명 밖에. 아카시는 학생회실에서 들고온 문화제 예산 편성에 관한 서류를 파라락 읽었다. 웃길 일이지만, 농구부 부장인 아카시 세이쥬로가, 학생회 회장인 아카시 세이쥬로에게 보낸 것도 포함되어 있다. 쌍둥이도 동명이인도 뭣도 아니다. 그냥 동일인물이다. 


농구부는 체육관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레이업 연속 성공수에 따라 상품을 주는 초심자용 레크리에이션과, 5대5의 간단한 농구대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우승팀은 라쿠잔의 레귤러들과 경기를 하는 구조다. 라쿠잔은 지금 당장만 해도 4년 연속 인하이 우승을 했고 그 외에도 많은 기록을 가진 고등학교고, 고교 농구계에서 결코 그 위상은 낮지 않다. 실력 시험을 위해서 혹은 간단한 호기심에 의해서 참여자는 많을 것이라는 중론이다.  



-



오후, 황혼이 깔리는 시간. 수업이 끝나고 부활동으로 향해야 하는 그 짧은 시간에 아카시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제 읽은 책을 돌려주러 갈 셈이었다. 도서관은 도서부원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고, 농구부가 끝날 때는 이미 마감을 했다. 그리고 잘 되면 다른 목적도 충족 시키고.


도서관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조용했다. 그리고 아카시의 예상대로, 다른 목적도 이룰 수 있었다. 아카시는 헤매이지 않고 똑바로 카운터로 가, 반납 절차를 밟았다. 도서부원인 듯한 남학생이 책을 읽고 있다가 아카시의 기척에 움찔 놀란 건 조금 재밌었다. 


아카시는 그 남학생이 보던 책을 눈여겨 보았다가, 책장으로 가 흥미가 갈만한 책을 몇권 뽑아들었다. 어느쪽인가 하면 과학에 관한 책들로 빈말로도 시대소설과는 맞지 않는 분야였다. 


그것들을 빌렸다. 도서부원이 다시 움찔 놀란 건 이번에는 좀 못마땅했다. 아카시가 도서관에 오는 날은 정해져 있어서, 도서부원의 로테이션과도 맞물리기 때문에 아카시 입장에서는 이미 익숙한 얼굴인데 볼때마다 놀라는 건 좀. 아까야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지만. 무거운 책을 가방에 집어넣고 농구부실로 향해 로커에 거칠게 쳐넣는다.


"안녕, 세이쨩. 도서관 들렀다 온거야?"

"응."

연습복으로 갈아입은 채인 부부장인 미부치가 살갑게 말을 건넸다. 아카시를 기다린 모양인지, 잠깐 이야기를 하고 그대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미부치는 믿음직한 부부장이기 때문에, 아카시가 가기전 까지 제대로 부원들을 통솔하고 있을 것이다. 


수업이 늦게 끝난 클래스라던가, 아카시처럼 다른 볼일을 보고난 후의 학생들에 뒤섞여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체육관으로 향했다.


감독과 아카시 자신의 지시 아래 하에 열심히 몸을 단련하고, 자율연습이 하나둘 시작되었다. 3학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레귤러인 마유즈미나, 매니저인 히구치정도. 2학년이야 마지막 남은 한자리가 3학년인 마유즈미니, 내년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3학년에겐 이제 남은 기회가 없다. 윈터컵도 아카시의 의향대로 마유즈미를 포함한 5명으로 가기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아카시는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은 일찍 자율연습을 그만두기로 했다. 어쨌든 라쿠잔의 문화제는 3일동안, 지역주민들까지 끌어들여 대규모로 치뤄지는 축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배의 선장을 맡고 있는 것은 아카시다. 완벽이 아니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 검토하고 검토하는 수 밖에 없다.


"벌써 가는거야?"

"아, 학생회 일이 남아 있어서."

"문화제 때문이야? 너무 고생하는 거 아니야?"

"나는 할 수 있으니까."


미부치의 걱정을 담담하게 흘려보내고 아카시는 기숙사에 들러 샤워를 한 다음, 어제 읽던 서류를 마저 읽었다. 도서부는 문예부와 협력해, 문예부원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로 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학생들도 제법 있다고 들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거기까지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요청한 예산이 많았다. 아카시는 빨간펜으로 도서부와 문예부의 요청을 반려했다. 그리고 나머지 특성을 살린 활동이 많은 문화부와 달리 운동부는 포장마차 출점이 제법 많았으므로, 다시 한번 논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회의 때 서로 이야기해서 줄이라고 했을텐데. 그대로 올려버린 것 같았다.


반은 지역 축제나 마찬가지라, 포장마차는 학교 바깥에도 많이 세워진다. 업자나 지역 상가의 포장마차만 해도 많은 수다. 거기에 어설픈 아마추어가 끼어들어봤자 손해만 볼 뿐이다. 



*


다음날, 급하게 운동부의 부장들을 불러모았지만, 의외로 반항 없이 전부 모였다. 학생회장인 아카시가 단순한 공부벌레가 아니라 그들과 같이 농구부라는 운동부의 부장이며, 인하이 우승이라는 실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아카시는 분석하고 있었다. 대부분 3학년이 은퇴하고 현 2학년이 주장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한몫할 것이다.


기나긴 입씨름 끝에 가위바위보로 포장마차 출점을 정하게 된 아수라장을 뒤로한 채, 아카시는 회의실을 나왔다. 그리고 현 문예부장을 맞닥뜨렸다. 은퇴하지 않은 몇 안 되는 3학년 부장이었지만 아카시는 그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물리적인 이유에서다. 아카시는 뛰어난 눈으로 그 뒤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눈이 마주친 상대가 움찔 하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카시는 고개만 까닥이고 다시 문예부장을 바라보았다. 문예부장은 전형적인 서생 스타일의 덥수룩한 머리에 큰 검은 안경을 끼고 몸이 가는 남학생으로, 머리가 좋아서 교토대를 시야에 넣고 있고 실제로 아카시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들어갈만한 했다.  

     

그런 문예부 부장은 잔뜩 화가 난 채 말을 더듬거리며 아카시에게 항의했다.


"우, 우리 예산 요청이 거부된 이유가 뭡니까."


안타깝게도 그는 좋은 머리 대신 패기가 없었다. 아카시는 단도직입적으로 싹뚝 잘라냈다.


"요청한 예산이 너무 많습니다."


일단 농구부도 아니고, 선배니까 존댓말을 해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 그건 다 필요해서 그렇게 올린 겁니다!"

"어디에 어떤 이유로 필요합니까."


아카시가 음의 높낮이도 없이 평탄한 목소리로 묻자, 잘 질문했다는 듯 반색하고 이야기를 줄줄 쏟아냈다. 판매하고 전시할 잡지 백여권에 교문 앞에서 나눠질 무료배포지, 무료 다과까지. 


"문예부 잡지를 그만한 수의 사람들이 사갈거라고 생각합니까?"

"우리한테는 처,천재가 있습니다!"


문예부 부장이 등 뒤에 서있던 도서부원의 팔을 잡고 끌어당겨 아카시의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도서부원은 부끄러운지 몸에 힘을 줘 버티고 있었으나 이내 체념한 듯 아카시의 앞으로 나왔다.


"천재?"

"…그만합시다, 부장. 제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팔릴 것 같지도 않으며."


아카시의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에 도서부원이 갸날픈 목소리로 말했다. 제법 낮은 목소리였다. 아카시가 언제나 도서관에서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으로 밖에 듣지 못했던 목소리였다. 


"쿠로코군이 천재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문예부원 12명 전부가 쿠로코의 이야기를 읽고 감탄했습니다!"


문예부 부장이 힘을 주어 말했다. 등 뒤에서 이제서야 가위바위보!를 외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카시는 골이 아팠다. 앞에는 복도에서 소리치는 바보, 뒤에는 조용히라는 말을 모르는 바보들. 오늘 하루 종일 조용히 하라는 말을 몇번이나 외쳤던가.


아카시는 도서부원─쿠로코가 자신을 경악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제서야 아카시는 자신이 순수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읽고나서 이야기 하도록 하죠. 저 포함 학생회 전원에게 읽힌 다음 한명이라도 반대자가 나오면 예산은 제가 정한대로 내드리겠습니다. 다만 전원이 찬성하면 그쪽이 원하는대로 예산을 편성해드리죠."

"저, 절대로 우리쪽 의견이 관철될 겁니다!"

"네, 원고는 나중에라도 학생회실에 보내주십시오. 이야기는 이것 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또 다음에."


아카시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비켜 걸어갔다. 등 뒤에서 "지, 지쳤다…." 하고 털썩 쓰러지는 소리와 "수고하셨습니다, 부장." 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론만 말하면, 아카시를 제외한 모든 학생회의 일원이 예산 증감에 찬성했으나 아카시가 반대한 덕분에 문예부 부장이 원하는 정도의 증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문예부원들이 사비를 반입해 잡지를 찍어낸 덕분에 문예부가 원래 예상했던 정도의 부수를 찍어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학생회 임원에게 그 보고를 들으며 아카시는 알바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하게 만드는 쿠로코군의 소설이 가진 매력에 문득 자신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



문화제 마지막 날, 농구부는 첫날부터 밀려드는 손님들로 정신이 없었다. 아카시는 학생회장으로 일하며 때때로 농구부 부장으로써도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농구부는 부부장인 미부치에게 맡긴 상태이지만 그래도 우승팀과 풀타임으로 승부도 해야했다. 압살이었지만. 


쉴틈없이 몰려드는 클레임과 사건사고에 대처하던 학생회가 겨우 여유를 가진 건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뒷풀이까지 무사히 마친 밤이었다. 벌써 어두워진 주변에 아카시는 자신이 문단속을 할테니 먼저 가라며 학생회 임원들을 보냈다. 


학교 건물을 교사진들과 함께 모두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체육관을 찾았다. 체육관은 아직 불이 밝혀져 있었다. 농구부에 찾아온 손님들이 아직 있나 싶어 안을 살펴 본 아카시는 익숙한 얼굴에 발소리를 죽여 가까이 다가갔다.


텅!


농구공이 골대를 맞고 튕겨져 나왔다. 하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볼을 던졌다. 그러나 다시 실패.


"…문예잡지도 제법 성공인 것 같던데."


한참동안 10개를 던지면 1-2개를 성공하는 정도의 서툰 레이업을 보던 아카시가 말을 꺼냈다. 쿠로코가 깜짝 놀라며 공을 떨어뜨리고 뒤를 바라보았다. 


"아, 아카시, 군…."


그러면서 눈치를 보는 것이, 군을 붙인 것이 잘못 되지 않았나 고민하는 것 같았다.


"동갑이니까 상관없어. 쿠로코 테츠야군."

"이름, 알고 있네요."

"테이코 중학, 농구부 3군에, 퇴부 했다가 문예부, 그리고 나와 같이 라쿠잔에 진학한 학생은 드무니까."

"…역시 아카시군이네요."

"보통은 아니지만, 쿠로코군도 나름대로 눈에 띄기 쉬워."

"제가요?"

"카타카나 이름에, 적어도 나는 매번 도서관 갈때마다 만나니까."


아카시는 준비된 변명을 내놓았다. 


"그런 의미입니까."

"그렇지."


잠깐 침묵이 흘렀다.


"미안합니다, 체육관과 공, 마음대로 써버려서."

"아니, 괜찮아. 그러려고 내가 확인하러 온 거고. 오랜만에 농구가 그리워지기라도 했어?"

"조금 그렇습니다. 하지만 역시 실력은 그대로네요."


통, 통, 쿠로코가 드리블을 하며 말했다. 어설픈 손놀림. 아카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말하지 않았다.


"음, 내가 조금 가르쳐줄까?"


쿠로코는 조금 혹한 듯 아카시를 바라보았으나,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저는 이미 농구를 그만둔 몸이고, 안 그래도 바쁜 아카시군에게 그런 부담을 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중학교 때는 늘 응원하러 찾아왔다가 고등학교 때는 그만둔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야?"

"!"


쿠로코가 아카시를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아카시가 쿠로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알고, 알고 있었습니까?"

"매번 앞자리에서 그렇게 뜨거운 눈으로 응시당하면 알기 싫어도 눈치 채."


쿠로코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인하이 결승전에 학교가 학생들을 동원했던 것도 알고 있고, 그게 강제적은 아니였던 터라 꾀병이나 학원을 핑계로 빠진 학생들이 많았던 것도 알고 있다. 애초에 학생들을 소집한 게 학생회다. 그래서 더 느슨해질 수 밖에 없었지만. 다만, 쿠로코 테츠야가 빠진 것은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


침묵을 지키던 쿠로코가 입을 열었다. 아카시는 그게 무슨 말이든 두 사람의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알아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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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s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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